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어거스틴) 성인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내용이 길어서 1탄, 2탄 등으로 나눠서 설명하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1탄>
중세철학의 대표 철학자로 아우구스티누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죠.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랑 닮은 듯 친숙할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오늘날에 성인으로 존중받고 있지만,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방황도 많이 하고 잘못된 길을 들어서기도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철학자는 태어날 때부터 남다를 것 같고 천재일 것 같고 올곧았을 것 같은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런 류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아우구스티누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좀 동질감 같은 걸 느꼈죠.
1. 아우구스티누스의 탄생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11월 13일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Tagaste)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북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서 행정일을 하는 로마의 하급관리였습니다. 물욕에 찬 전형적인 세속적 관리였기 때문에, 늘 명예와 성공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죠.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태어났을 때 장남인 이 아들만큼은 상급 관리가 되게 만들어야겠다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어머니 모니카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성품이 온화하고 인내할 줄 아는 지혜로운 분이었습니다. 타가스테의 신사임당이라고 할까요? 세속적 아버지와 종교적 어머니가 서로 이질적이죠? 아우구스티누스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이질적인 두 요소 사이의 긴장감을 지닌 채 태어났던 것입니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학창 시절
아우구스티누스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머리가 비상하고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노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우리와 비슷하죠? 그리고 놀이와 내기 등에서 지는 것을 무지 싫어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자서전 같은 책 『고백록』이 있는데, 거기서 선생님한테 매 맞던 체험을 고통스럽게 회상하는 부분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놀기를 좋아해서 사고를 많이 쳤던 건지는 몰라도, 학교 가면 선생님한테 매를 자주 맞았나 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으고 ‘학교 가면 선생님한테 매 맞지 않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내 주님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하죠.
아우구스티누스는 골목대장처럼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친구들이랑 남의 밭에 들어가서 서리를 하는 등의 말썽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작은 마을이라 소문은 더 빨리 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부모님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부모님 입장에서 하기 쉬운 생각이 뭔지 아십니까? “우리 애는 착하고 좋은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친구들이랑 떨어트려 놓기 위해 아예 멀리 보내버립니다. 북아프리카 최대 도시인 카르타고(Carthago)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3. 어린 나이에 미혼부가 되다
부모님은 열심히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멀리 유학을 보낸 것인데,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처음 본 카르타고라는 큰 도시는 천국과 같았습니다. 새로운 문물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밤이 되면 펼쳐지는 문화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사로잡았죠. 16세 사춘기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적 호기심에 깊이 빠져버리게 됩니다. 하라는 공부는 제대로 안 하고 열심히 환락가의 누나들을 찾았던 거죠. 그러다가 그중 한 명의 여자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가 생기게 되었고, 17-18세로 넘어갈 무렵 아우구스티누스는 미혼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눈물로 호소해도 공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아우구스티누스였지만,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난 뒤에는 달라졌습니다.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는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뭘로 지었는 줄 아세요? “아데오다투스(Adeodatus)”라고 지었습니다. “신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죠.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수사학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던 중 키케로(Cicero)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라는 책을 읽고 철학에 매료되었습니다. “필로소피아”(Philosophia),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한 단어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도 지혜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죠. 돈도 벌긴 해야겠지만, 진짜 공부하고 싶은 건 바로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 이단 '마니교'에 빠지다
‘지혜’하니까 뭐가 떠올랐을까요? 아우구스티누스는 평소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에 모든 지혜가 담겨있단다.”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며 늘 읽으라고 권유했던 책이었는데 갑자기 떠오른 거죠.. 아우구스티누스는 지혜를 찾기 위해 성경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린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모순이 가득한 책처럼 보였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에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마니교'라는 신흥종교에 깊이 빠져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이단'이라고 평가되는 종교였죠.
마니교의 주요 구도는 선신과 악신의 싸움입니다. 반지의 제왕 영화 보셨어요? 악을 대표하는 사우론과 선을 대표하는 호빗족이 서로 싸웁니다. 마니교는 그런 구도로 세상을 바라봤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잡하거나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다 악신 때문이고, 반면에 좋은 일들은 선신이 힘을 얻을 때 발생한다고 보았죠.
마니교는 내적 갈등도 선신과 악신의 싸움으로 설명했기에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찰떡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우구스티누스였기에 더 내적 갈등이 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니교는 이를 선신과 악신의 싸움으로 명쾌하게 설명해줌과 동시에 한 가지 기가 막힌 장점이 있었습니다. 내가 나쁜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 악신 탓으로 돌려버릴 수 있었던 거죠..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내가 악신을 어떻게 이기겠나요? 악신이 나보다 월등하게 셀 것이기 때문에, 내가 나쁜 행동을 하거든 그 책임은 내가 아니라 악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나쁜 행동을 해도, 환락가를 들락거려도 모든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죠? 윤리적 책임을 악신에게 돌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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